살다가 뜻하지 않게 멈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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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1
큰 길가는 차가운 햇볕이 비추고 있었고 달리는 차들은 도시의 부산함을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여자는 손을 흔들며 택시를 세워보려 하지만 좀처럼 빈 택시는 오지 않고 도로를 사정없이 베어버릴 것 같은 바람과 함께 차들은 쌩쌩 지나가 버린다.그녀는 더욱 움츠려 몸을 굽히며 “아이! 내 차로 갈까?” 의미 없이 푸념처럼 내뱉는다. 사실 여자는 몸이 많이 안 좋아서 요양 차 친구가 사는 여주로 갈려는 것인데 장시간의 운전은 그녀에게는 무리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빨래를하고 반찬하고 집 안 청소도 하고 오늘 하루는 좀 신나게 시작해 보려고 부산을 떨고 서야 속이 후련해진 것 같아 출근 준비해 보려고 화장대 바라본다. 어제 아무렇게나 던져둔 핸드백, 그녀는 왠지 모르게 핸드백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화장대 모퉁이에 떨어질 듯 아슬하게 걸쳐 진 핸드백을 조심히 들며 그녀는 조용히 “미안해”하고 말하며 피식 웃는다. 갑자기 자신이 낯설게 느껴져서였다. 많은 소소한 것들이 그냥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에 그저 가기만 하는 시간인데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핸드백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한 말이 어색해져 버린 것이다.
내가 핸드백을 보며 “미안해”라고 하던 그날 이후 난 몹시 아팠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힘든 시간을 지내고 나니 얼굴은 뭉크의 절규처럼 퀭한 눈과 홀쭉한 볼 그리고 몸은 에스 자로 좌우로 흐느적거리는 것 같았다.침대에 누워 할일 없이 허공을 보며 천장에 상상의 그림을 그렸다 푸른 산과 아름드리나무 그리고 바위. 맑은 물속을 빠르게 질주하는 작은 물고기도 그려보며 시간을 보냈다. 온종일 기운 없는 몸을 침대에 붙이고 있다 보니 새벽에 서야 잠든 나는 한낮이 돼 서야 전화 벨 소리에 눈을 떴다 한동안 전화 받을 생각도 없이 침대에 걸 터 않아 멍하니 핸드폰 화면이 깜빡이는 모습을 바라보다 벨 소리가 멈춘 후에야 정신이 든 듯 핸드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여주 사는 친구 꽁미였다 꽁미는 잘 삐져서 우리 친구들은 본명인 경미보다 꽁미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꽁미의 목소리
“애 소양이니?”
“너 아프다며 어쩌니 지금도 많이 아프니?”
“ 내가 네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데 그래 지금은 좀 어때”
이 애는 숨도 안쉬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데 그 목소리 그 말투만 들어도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응 지금은 괜찮아”
“ 애 근데 대답할 시간은 주고 말해 계집애야. ”
“난 네가 아프대서 놀래서”
“난 이제 괜찮으니 걱정 하지 마! 어떻게 잘 지내고 있어”
안부만 한참 통화하고 나서 꽁미는 나에게 여주로 요양 목적으로 오는 게 어떻냐 고 물었다.
난 생각할 것도 없이
“그래 내가 가도 괜찮겠어.”
나도 이 큰 도시에서 집에만 있기 너무 힘들었거든.”
나답지 않은 빠른 결단이었다 나도 놀라며 꽁미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차피 다 결정됐는데 학습된 무의식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꽁미는 신나서 “그래 빨리 와 방 준비해 놓을게” 한다.
꽁미는 부모님 집에서 나와 따로 살고 있었다.
“계집애 시집도 인간애가 멀쩡한 집 나두고 왜 따로 나와 살아서 나를 기쁘게 해주고 그래!”
“하하하”
꽁미는 내 말이 재미있는 듯 연신 웃었다 우리는 그 뒤로도 한참을 통화하며 웃었다.
나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낫는지 신나게 재잘대고 만나서 이야기 하자며 끊었다.
아프면서부터는 일상생활이 단조로워져서 누군가와 긴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나에게 꽁미의 전화는 차가운 온돌방에 보일러를 틀 듯 서서히 생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버스 안은 의외로 한산해서 학생같이 보이는 승객 몇과 어르신 몇 분만 탑승해 있었다.
그녀는 버스에 올라 좌석 위 수납 칸에 여행 가방을 놓고 버스 좌석으로 빨려 들어가듯 않아서 몸을 움츠렸다.
아프면서 바깥출입을 안 하던 내가 큰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느라 떨고, 어렵게 탄 택시는 버스터미널주변공사로 좀 떨어진 곳에 내려주고 매정하게 가버려 추위가 익숙하지 않은 나는 온몸이 얼어붙어 오들거렸다.
버스는 이제야 히터를 틀었는지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고 냉기가 돌고 있었다.
버스 창밖은 이제 흰 눈이 매서운 바람을 타고 날리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은 그녀는 안도에 한숨을 내쉬며 양손을 비벼서 차가운 볼을 갖다 대었다 찬바람에 시렸을 볼에 약간의 따뜻함이 전해지자 추위에 움츠렸던 마음은 조금씩 풀렸다.
여주의 아침은 맑은 새소리로 시작됐다.
꽁미와 나는 학교 때 이야기 졸업식 날 얘기 전 남자친구 얘기 등 지난 이야기는 다 꺼내서 이야기하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들었는데 아침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창밖으로 지저귀는 새 들이 어찌나 부지런히 움직이며 짖는지 나까지 새 들의 막내딸이라도 된 듯 일어나 창가로 갖다.
창밖은 꽁꽁 얼음 세상인데도 창문 열고 찬 공기를 맞고 있으니, 마치 다시 살아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야! 소양아! 창문 닫아! 추워! 아프다는 애가 추운데 창문은 열고 그래!”
“ 난 좀 더 자야 한다고.” “추워!”
꽁미 이 계집애는 역시 대답할 틈도 안 주는 속사포 말을 뱉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좋다!”
“여주의 아침!
여주에 와서 생활하며 몸이 훨씬 좋아 진 소양은 조금씩 산책 시간을 늘려가며 체력을 키우고 있었다.
겨울바람이 이제는 신선하게 느껴지고, 볼 가로 쓱 지나치는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오늘은 좀 더 많이 걷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선 참이라 어디로 가볼까 하고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니 저 멀리 남한강 이 보였다 강으로 갈려면 면 시내를 지나가야 하지만 작은 면이 이긴 해도 번잡함이 싫어 살짝 외곽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면이라 살짝 외곽으로 돌아가도 그리 멀리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멘트 블록만 쌓아서 비바람에 할퀴어 겉이 벗겨진 블록 담옆을 걷는 그녀는 담 밑의 냉이며 차 바퀴에 퉁겨져 길모퉁이 모래처럼 쌓인 돌조각인지 시멘트 블록에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돌가루들을 쳐다보며 걸으면서도 마음은 빨리 강가로 가고 싶어서 발걸음은 빨라져 가고 있었다.
낡고 허름한 블록 담벼락 끝에는 어김없이 대문이 있었다. 소양은 이 담이 끝나면 새로운 환경과 만난다는 생각에 담 끝 대문 기둥을 보며 아쉽다고 표현하기에는 별것 아닌 섭섭함으로 바로 보고 있는데 대문 안쪽에서 개가 주둥이만 보이고 있었다 아마도 목줄이 묶여 더 이상 나오지 못하고 호기심에 코만 벌렁거리고 있는 것일 것이다.
흰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 것 같아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소양 또한 주둥이만 내밀고 있는 저 개에 대한 호기심이생겼다.
개도 나도 서로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가는 형국인 것이 되어 이런 상황이 재미있기도 했다.
개가 달려들까 봐 찻길 쪽으로 비켜 걸으며 대문 앞으로 다가가 보니 꽤 넓은 대문은 문은 달리지 않았다 아마도 오래돼서 녹슬고 삐걱거리는 문이 거추장스러워 치워 버렸을 것이다.
서서히 다가가자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짧은 줄을 당겨가며 몹시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는 개가 기다렸다는 듯 빨리 오라고 앞발질 뒷발질 하며 반겨주고 있었다.
나도 전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인 것처럼 거리낌 없이 다가가 노랑 강아지에게 손을 내주며 쓰다듬어 주었다 난 한 번도 개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데 마치 개를 아주 이뻐 해본 경험 많은 아주머니처럼 스스럼없이 개의 등을 쓰다듬고 개의 앞발을 잡아주며 “ 어머 이쁘다 너” “어쩜 이렇게 사람을 반겨주니” “ 강아지 안녕”하며 강아지 앞에 쪼그려 않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집은 비 가림 차양으로 시골집치고는 좁은 마당을 덮어 살짝 어두운 마당에 큼지막한 화분들이 부자연스럽게 여기저기 놓여서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었고 주인은 집을 비운 듯 댓돌엔 주인 기다리는 슬리퍼 한 짝과 마당을 덮은 비가림 차양으로 좁은 마루는 더 컴컴한게 싸늘해 보였다.
개에게서 큼큼한 냄새도 많이 나고 개가 너무 설치며 살갑게 달려들므로 한 발짝 물러서니 개는 조금이라도 더 오려고 꽥꽥거리며 짧은 목줄을 당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강아지 목줄이 너무 짧았다. 아마도 이 집주인은 도롯가로 나가지 못하게 겨우 주둥이 끝만 집 밖으로 살짝 나오게 묶어 둔 모양이다.
참으로 알량한 아량이었다, 대문 밖으로 조금의 주둥이가 냄새로나마 맡아보는 세상이 얼마나 궁금할까? 소양은 이 개가 밖으로 보이는 주둥이 만끔만 한 주인의 아량이 참으로 야속했다.
난 강아지가 안쓰러워서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놀아 주며 보니 고무 대야 엎어 논 개집 옆에는 언제 줫는지도 모를 이 집 주인네가 먹고 남은 생선찌개에 고춧가루가 군데군데 보이는 밥알이 섞인 개밥이 보였다. 지저분하고 더러운 환경에 난 순간 화도 나고 기분이 매우 안 좋아져서 개에게 “ 강아지야 잘 지내 또 보자” 인사하고 돌아섰다 마음 한구석이 더러운 개 밥그릇의 음식이 뿌려진 것 같은 찝찝함이 남은 체로 남한강 쪽으로 걸어 나갖다.
강가에 가면 이 오물 감이 씻어질 것 같았고 강가로 가기로한 것이 오늘의 필연처럼 느껴졌다.
나는 마치 세례를 받기 위해 요한에게 이끌려 요단강으로 가는 예수님처럼 넓게 펼쳐진 밭길 사이를 지나 남한강에 섯다.
조용히 멈춰있는 듯 흐르는 강물을 가까이서 보니 이제야 아까 본 음식 찌꺼기 개 밥그릇의 불쾌감이 씻겨져 나간 듯했다.
다음에..................이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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