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너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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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2
긴 겨울밤이 지루했는지 하늘에서는 눈이 쉬지 않고 내리더니 새벽이 돼서야 그쳤다. 해가 올라오는 아침이 됐지만 밤새 내린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대지는 여전이 눈 속에 웅크려 있다.
너무도 조용한 아침 세상 모든 소리가 눈 속에 잠겨버린 듯하다.
이 고요한 적막을 뚫고 어디선가 들리는 외마디 같은 수탉 울음소리는 눈속에 묻혀 모두 숨죽여 있을 때 첫 외마디 수탉의 홰 치는 소리는 마치 민족 열사의 외침처럼 느껴진다.
늦은 수탉의 외침에 그제야 새들이 바삐 움직이며 청아한 새소리를 내며 창공으로 오르고, 눈 속에 웅크리고 있던 모든 것들이 눈을 힘차게 걷어 올리고 하루를 시작했다.
소양도 이 소란과 함께 일어나 어제처럼 창가로 다가선다. 간밤에 내린 눈이 소복이 쌓인 걸 보고 소양은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놀란 듯, 어머 눈이 많이 왔네 애 꽁미야, 눈이 많이 와서 쌓였어, 하며 옆에 자던 친구를 흔들어 깨워 일으켜 창가를 가리켜 보지만 친구는 별 관심 없다는 듯 “출근하기 힘들겠네” 한마디 '툭' 내뱉으며 누워버린다.
꽁미미는 새로 만난 남자친구가 가리켜 주는 당구를 배우느라 어제 밤늦게 서야 들어와 “그 자식은 내가 당구를 재밌어서 하는 줄 알아” "바보 같은 자식, 하기 싫은 당구 억지로 하느리 힘들었어“하며 푸념을 하고 잠들었다.
소양은 발자국 몇개밖에 나지 않는 제법 큰 시골 길을 걸으며 눈을 밟을 때마다 푹신한 감촉을 느끼려 살짝 지긋이 밟으며걸어갔다. 어제 면에서 보았던 개가 생각났지만 차가운 시멘트 바닥과 구정물 통 같은 밥그릇을 또 보기가 싫어서 오늘은 남한강 쪽이 아닌 산 쪽으로 산책하러 가려는 것이었다.
어제 소복이 내린 눈이 1월의 추위도 덮어버린 듯 온화한 느낌이 들었고 맑게 갠 하늘에서 내리비치는 햇볕은 눈 속에서 새싹이라도 틔울 듯 따뜻했다. 가사도 잘 모르는 기분 좋은 노래를 흥얼거려 보며 자신이 무척 건강해지고 활발해 졌음을 느꼈다. 수원에서 여주로 한 시간 거리를 이동했을 뿐인데 달라진 자신이 신기했다.
살짝 구부러진 길을 따라 걸어 갈수록 발자국은 없고 부지런한 새 발자국과 고양이 발자국만 길가로 조심히 나있다. 길옆을 따라 흰 눈을 덮어쓴 나무들이 미동도 없이서있는 곳을지나자 비탈진 밭이 눈 속에서 잠들어있는 듯 덮여 있어 파란 하늘만 유난이 돋보였다.
30분쯤 걸었는데 꽤 올라온 듯 멀리 시내가 보였다. 처음 보는 나를 꼬리를 흔들고 앞 발질 뒷 발길질 반겨주던 황구가 생각났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간밤에 눈이 많이 왔는데 잘 있는지 걱정까지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여주에서 처음 사귄 친구였다. 그새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로 접어 들때 길 아래는 네가구 정도의 시골집이 벽을 맞대고 모여있고 제법 큰 나무 서너 그루 길가에 커다란 장승처럼 솟아있는 외딴 마을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또 어제처럼 묶여있는 개가 있으면 어떡하지”
나는 어제의 기억이 좋지만 않았으므로 내심 걱정을 하며 마을로 들어섰다. 강판으로 덮은 팔작지붕 안채와 맞배지붕 창고 그리고 넓은 마당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은 조용했다.
어제 처럼 묶여 있는 개는 없는 듯 보였다. 마음을 놓고 집들을 지나쳐 가다 무심히 고개를 돌리자, 마당 한가운데 앉아 미동도 않고 나를 주시하고 있는 하얀 개가 보였다. 귀는 쫑긋하고 까만 코는 하얀 털과 쌓인눈 때문에 뚜렷하고, 풍채는 단단한 개가 짖지도 않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가던 길 가시오 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딱히 별 반응 보일 필요없어 그냥 지나쳐 나오니 다시 넓은 들이 나왔다.
여전히 햇살에 빛나는 들판을 보니 좀 뛰어 보고 싶어진 나는 총총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랜만에 달려보는지 모르겠지만 날아갈 듯 가뿐했고, 꽤 오래 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집에서 나올 때 헐렁한 실 내복에 오리털 반코트만 걸치고 나온 탓인지 목걸이가 자꾸 목에서 출렁거리며 밖으로 튀었다. 차가운 금속이 목에 부딪쳐 거추장 스럽게 한다. 목걸이를 빼 들어 주머니에 넣으면 잃어버릴 것 같아 목걸이를 손에 꼭 쥐고서 주머니에 손과 함께 넣은 채로 총총거리며 계속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가다 보니 큰 소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고 한가운데 묘가 보였다. 한참을 뛰었으므로 지친 나는 헉헉거리며 그 묘 옆에 가서 않았다. 따뜻한 햇볕에 눈이 많이 녹았는지 이제 군데군데 마른 풀이 보이기 시작했고 멀리 들도 눈이 녹은 듯 검은 속살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손에 꼭진 목걸이를 빼 들어 바라보았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미련처럼 간직하는 목걸이 k가 나에게 청혼할 때 준 목걸이였다. 이제는 헤어진 k를 생각하니 마음이 다시 쓰리고 아프다.
눈 위에서 반짝이는 빛처럼 내 곁에 머물며 함께 반짝일 것 같은 k와의 사랑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목걸이를 묘 앞에 상석에 올려 놓고 그새 땀이찬 손을 펴서 목걸이를 쥐었던 손바닥을 보며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슬픈 자화상을 보듯 한참을 손바닥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낮에 좀 뛰어서 그런지 아직도 기분은 좋았다. 퇴근하고 올 꽁미와 함께 간만의 맛있는 저녁과 소주 한잔 해볼까 하는 생각에 꽁미에게 전화를 했다.
꽁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꽁미야 오늘 닭 볶음 탕에 소주 한잔 어때”
“지금 닭 볶음 탕 끓이려는데”
꽁미는 미안하다는 말투로
“미안, 소양아 오늘은 안돼”
“있잖아 그 바보 같은 놈 유씨가 오늘은 당구장 말고 영화 보자고해서”
“ 영화 보고 술 한잔하고 하면 아마 나 외박할지 몰라”
“바보 같은 유가 말이야, 이제 내 맘을 눈치챘나 오늘은 좀 적극적이네 ,하하하,”
“부케 받을 준비해 소양아 ,하하하,“
또 쉬지도 않고 자기 할 말을 쏟아낸다
“그래 그럼 좋은 시간 보내 난 혼술 할게."
“그래도 집은 들어 와야 해”
전화를 끓고 나니 식욕도 좋은 기분도 전화 끓듯 단절되어 버린듯 사라졌다.
“에구야!”
“몸도 안 좋은데 웬 소주냐!”
“밥이나 먹자!“
하려 던 닭 볶음 재료를 다시 냉장고에 넣고 돌아 서는데 목이 허전했다. 목걸이를 오늘 낮 묘 상석에 두고 온 것이다, 두고 왔다는 걸 인식하면 서부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놀이 공원에서 엄마 손을 놓치고서 엄마를 찾아 헤매지만 어른들의 허리 사이로 보이는 건 또 다른 어른들의 허리뿐이고 엄마의 인자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을 때 같은 그 불안함 나는 그때 이후로 `사람들` 하면 허리와 허리사이의 허리가 떠올랏다.
내가k를 못 잊은건 알지만, k가 준 목걸이때문에 이렇게 불안해 하는 것을 생각하니 내가 싫어졌다.
밖을 내다보니 겨울 해는 벌써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 찾으러 가면 어두워 질 건데 내일 찾으러 가야지 하며 포기하고 라면이나 끓일까 하고 냄비를 찾아들었지만 허전한 목에 도는 감촉은 차갑고 날카롭게 내 불안함을 파고들고 있었다.
나는 냄비를 내려놓고서 옷을 챙겨 입었다 해가 지면 추울 것이기에 좀 따뜻한 니트를 받쳐 입고 긴 패딩을 걸치고서 휴대전화기를 꼭 쥐고 집을 나섰다. 어두워지면 핸드폰 플래시가 도움이 되기에 자동차 키처럼 챙겨 든 것이다.
밖은 아직은 밝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집으로 들어오는지 제법 붐비고 있었다 아침에 걸었던 길은 벌써 눈이 거의 녹아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생겼고 저녁노을 빛에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여유 부리다가 해라도 지면 큰일이기에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실내포차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밝은 빛이 눈을 때렸다. 판자를 덕지덕지 붙여 투박한 옜스러움을 만들려 했지만,밝은 실내 때문에 어색해 보였다. 노란전구 였으면 하는 아쉬움과 밝은 실내에 부담을 느끼고 가계 안을 훑어보니 k 와 친구들은 얼굴이 발그레해서 각자 떠들며 술을 먹고 있었다. 가게 안은 k 일행과 연인으로 보이는 손님 한 테이블 뿐이 었고 꽤 늦은 시간이라 주인도 지쳤는지 손님이 왔는데도 반기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저 어디 않나 쳐다 볼 뿐이었다.
K의 친구들이 나를 보고 “어서 오셔요, 제수씨 ” 그중 넉살 좋은 k의 친구는 “이야! 제수씨는 볼 때마다 더 예뻐지네요.”하며 인사를 해주고서 는 나를 k의 옆자리로 안내했다. k도 좀 취한 듯한 눈을 하고서 “어서 와 자기 보고 싶었어” 하고 안 어울리는 아양까지 떤다.
몸을 비틀대며 탁자에 팔꿈치를 기대는 친구도 있는 것을 보아 꽤 마신듯한데 이런 장소에 자신을 부른 것이 좀 불쾌했지만 내색할 수 없어 억지웃음을 지으며 “어머 많이 들 마셨나 봐요, 댁에서 기다리시겠어요”하며 넌지시 술자리를 끝내기를 권유해 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행들은 집에 간다며 다들 인사를 하고서는 차례차례 나가버렸다.
k는 한 테이블 있는 연인이 신경 쓰이는지 건너편을 곁눈질처럼 내다보며 작은 소리로 “소양 씨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처음 볼 때부터 운명처럼 나의 여자가 될 거라 생각했어요”하며 생뚱맞은 고백을 했다. 분위기와도 안 맞고 굳이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새삼 할 사이도 아니여서 “우리도 일어나요”하며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자 의도한 바가 아닌 듯 당황스러워하며 안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들며 나를 자기 쪽으로 보게 한 후 자리에서 일어서 섰다. 그때 저쪽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일행도 일어서 계산대로 가자 k는 일어 선체로 나는 그에 허리를 바라 본 체로 순간이지만 잠시 멈춘 듯 그렇게 어정쩡하게 그 연인이 계산을 끝내고 나갈 때까지 있었다. 여러 몸동작이 있었을 건데 그 순간만이 멈춘 듯 남아있다. 그들이 나가자 이제야 홀 가분 해진 듯 좀 큰 목소리로 나와 결혼해줘 소양 씨하며 목걸이를 꺼내 들며 무릎을 꿇는가 싶더니 서서히 일어나 나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려 했다.
나는 웃으며 손을 목 뒤로해 목걸이를 채웠다, k는 어차피 목걸이를 못 채우고 헤맬게 뻔해서였다.
“그 목걸이는 내 사랑의 목줄이야.”“언제나 나는 소양 씨 목에 걸린 방울처럼 딸랑거릴게”
식상하지만 그에 떨리는 말투를 보니 감동 받은 척 해야 할 것 같아, “나도 당신이 나를 묶어 두었다는 걸 안 잊을게 ”하며 닭살 스런 말을 하고 말았다.
언제 들어 왔는지 k의 친구들이 들어와서 “제수씨 불쌍한 놈 하나 살렸네요“ ”야! 우리 친구 전생에 나라를 구했구나“ 하며 축하해주었다.
평소는 이런 일방적인 구혼이 맘에 들지 않았던 나 지만 막상 이런 무례를 당하고 나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양가 부모님 상견례를하고 결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결혼 준비라는 게 뜬구름을 걷듯 행복한 일이라 하루하루 기쁜 날의 연속이었고 사귈 때보다 더 우리 둘은 서로 기대어 걸었고 잡은 손을 한시도 놓지 않았으며 결혼 인사를 드리러 다닐 때는 서로에게 파고들 듯 붙어 다녔다.
결혼을 삼일 앞두고서 나는 회사에 휴가서를 이메일로 제출하고서 결혼식 잘 끝내고 오겠다고 인사하러 가기 위해 작은 답례 선물로 커피와 과자를 차에 싣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왜 엄마! 나 지금 바쁜데 좀 있다 전화 할게” 하자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야! 소양아! 괜찮니!”
“뭐가! 왜! 무슨 일 있어!”
엄마는 이제 울 듯이“사돈에게 전화가 왔는데, 미안하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여기까지 말하고서 목이 메는 듯 이 더는 말을 잊지 못했다.
나는 되려 다급해져서“엄마 왜 그래, 왜 그러냐니깐,” 하고 되물었지만, 머릿속에선 영화나 소설 속 장면들이 스쳐 갖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한번 생각하는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상상이지 현실에서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일이기에, 다시 엄마에게 차분히 물었다.
“엄마, 진정하고 천천히 얘기해봐, 응,” 다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애써 침착하게 “사돈네가 파혼하자고 전화가 왔어.”“ 면목이 없다면서 자세한 것은 너를 통해 알려 주겠데” 나는 순간 방금 스쳤던 생각이 현실이되는 충격에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내 머릿속을 헤집어버렸다.
난 집으로 되돌아와 방안구석으로 웅크러 들었다. 모든 것이 무서웠다. k에게 전화하기도 회사 가기도 내가 웅크리고 있는 좁은 공간을 뺀 모든 게 무서웠다. 주변에 모든 것이 다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검은 입속을 들어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휴가서는 그대로 사직서 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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